신라 원성왕때에 영취산에는

덕이 높고 수행이 깊은 스님 한분이

오직 자연을 벗삼아 고고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숲에 사향노루가 있으면

자연히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것처럼

스님의 덕화가 세간에 은연중에 퍼져나가니

원성왕은 어려운 국사를 담당하는데 있어서

지혜와 덕 높으신 스님을 국사로 모시고

높으신 견해를 듣고 바른 정치를 하려고

사람을 스님 처소로 보냅니다



스님은 지금까지 속진에 물들지 않고

이와같이 아란야에서 조용히 살수 있었는데

국사가 되었다가는 이런 조촐한 즐거움을

어디서 맛보겠는가 싶어 신하들이 동구에 왔을 때

몸을 빼내어 자취를 감춥니다



그렇게 해서 이산 저산 돌아다니며

자신을 숨기고 탁발하며 살아가던 차에

어느 절에 몸을 의탁하리라 하고 그절에 가다가

작은 암자가 보이는데서 잠시 쉬려고

바위에 앉아 숨을 고릅니다



그때 막 일을 마치고 소를 몰고오던 노인 한사람이

쯔쯔 이름을 팔려면 조용히 팔아야지

그렇게 도망치면서 제 헛된 이름값을 올리다니

하고 혼잣말을 하는데 스님 들으라 하는 소리 같습니다



그 무슨 말을 그리 하십니까

내가 언제 이름값을 올리려 도망다녔으며

노인은 내가 누구인줄 알고 그런 말을 하십니까

하고 힐문(詰問)을 하니 노인은 다시 혼잣말로



스님들이 제 한몸 잘되고 편하자고

심산유곡에 입산수도하는 것을 알았더라면

석가모니 부처님도 법을 설하지 않으셨을 것을 ...ㅉㅉ

하고는 이랴 이 미련한 소 어서 가자 하고는

길을 가버립니다



스님은 자기를 향해 이름을 판다느니

이름값을 올리려 한다느니 하는 말들이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오늘 일진이 사나우니

길 가다가 정신 나간 사람을 보았네 하는 심정으로

목적한 처소에 이릅니다



마침 주지스님이 객을 맞이하여 차를 내주면서

혹시 여기를 오시면서 암자 앞에서

소를 몰고 가는 노인을 보았는가 묻고

그분이 보통 지혜있는 분이 아니셔서

근동에서는 문수대성의 화신이 아닌가

하고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존경하는 분이라 말합니다



그 소리에 스님은 아무 소리도 못하고 방에 들어

노인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밤이 깊어가는데

그만 바깥의 풍경 소리가 뎅그렁 하고 울리는 소리에

노인의 말이 뜻하는 바를 깨닫습니다



나의 이름이 높고 덕화가 널리 퍼진것은

일부러 그럴려고 하지 않았어도 자연히 그리 되었지만

그로 말미암아 국사자리를 피해 도망치듯 하는 것은

세간의 관심을 사서 더 고매하다는 소리가 나오기 쉽상인데

그것이 노인이 말한 이름을 높이고 파는 것이로구나



본디 내가 출가수도를 하는 목적은

어려운 중생들로 하여금 이고득락하는 길을

부처님이 하셨듯이 알리고 가르치기 위함일진대

나랏님의 국사 자리에 머물면

때로는 이런 저런 일로 머리가 복잡할수는 있으나

내가 마음 먹기에 따라 오히려 중생을 위하여

더욱 큰 일을 할수 있을 것이다 하고 바랑을 걸머 집니다



암자앞을 지나며 그곳에서 만났던

노인이 들려준 경책의 말씀을 생각하고

깊은 공경심으로 합장의 예를 올린 스님은

그길로 왕궁으로 들어가 국사의 자리에 머무르면서

불법을 널리 펴고 중생의 곤고한 삶을 벗어나게 하는데

크나큰 역할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연회국사도 훌륭하시지만

스님의 생각을 돌이키게 한 소를 모는 노인이나

빌미시 소를 모는 문수대성 이야기를 꺼내면서

간접화법으로 스님의 길을 안내하였던 주지스님등

모두가 다 보살의 화신이 아닐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나를 시비하는 이도 나의 스승이요

나를 칭찬하는 이도 나의 스승이며

나를 애꿎은 말로 비난하는 이도 나의 스승이고

내게 애를 먹이는 사람도 나의 스승이라 할것이니

눈만 뜨면 보고 배울 점이요

귀만 열면 듣고 고칠 점이 가득한 우리들입니다